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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근택 회화의 맛은 우선 재질과 결, 그리고 작업의 호흡에서 온다. 그의 그림은 대부분 종이에 호분과 수묵으로 작업한 것이다. 그 기법의 운용이 최근작에서 더욱 볼만해지고 있다. 짧고 빠른 먹과 호분의 터치들이 뒤섞이면서 물결이나 바람의 결처럼 퍼져나가며 만들어내는, 시원하게 하나로 장악된 공간의 독특한 재질. 그 사이 혹은 그 위로 바람처럼 혹은 유령처럼 어른거리거나 혹은 뜻밖의 방식으로 겹쳐진 모호한 형상들. 흔들린 스냅사진 같은 율동.
그의 작업이 시간과 운동을 느끼게 한다. 그의 작업엔 몸이 있고 에너지가 있다. 대상과 몸 사이의 대화, 그 양자를 오가는 운동의 반복. 몸이 반영된 속도. 기울기와 미끄러지기. 대상을 마주하는 몸의 기운 혹은 호흡과 태도. 바로 이런 것들이 한 호흡으로 이루어진 듯한 기를 갖고 있다. 생물처럼 확실하고 매끄러운 그 무엇. 이런 게 누구한테나 되는 일이 아니다. 대단한 역량이고 매혹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낯설게 하기’이다. 더 정확히는 ‘유근택스럽게’ 낯설게 하기라고 할까. 그의 그림들은 예사롭지 않다. 풍경 그림이건 실내 그림이건 대부분의 그의 작업에서 나는 환시, 유령, 바람결에 스치듯 한 것, 망연함과 적막감, 감추어진 심리적 긴장 같은 것을 느낀다. 무언가 숨어 있는 듯한, 어떤 사건이나 이야기, 혹은 감정의 상태가 숨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말하자면 자연이건 일상 장면이건 그 속에 어떤 은유나 심리적 긴장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작에서 더 그것이 느껴진다. 이야기는 대체로 일상의 그의 삶 주변의 사물 혹은 광경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나 연상에서 촉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것이 그의 작업의 독특한 맛과 내용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그의 작업의 결이라는 것도 사실은 이것과 따로 떼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유근택의 이 고유성은 최근 더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예전보다 점 점 더 많은 운동 방향의 벡터들이 작용하고 있고 작가가 더 많은 모호성과 자유를 갖고 그것들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의해 보면 이 벡터적 운동의 내용들은 사슬처럼 서로 연계되어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단순히 표피적,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수면 밑에서 서로 엉키며 벋어나가다가 불쑥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는 것이다. 곧 작가의 과거의 작업과의 연계성이 있고, 작업이 풀려나가는 흥미로운 궤적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2.
유근택은 역사, 사회 같은 무거운 주제로 출발한 작가였다. 동양화가로서 그것은 좀 이례적인 것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에게는 동양화가 지나치게 정신적인 것, 관념적인 것을 강조하는 것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동양화나 지필묵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다 구체적인 인간의 숨결을 담을 수 있을 것인가는 그의 오랜 동안의 관심사였고 지금도 그 점은 여전하다. 다만 첫 전시를 했던 1991년 당시는 보다 직접적인 방식이었고 그래서 소재적인 것에 집착하는 한계가 있었다. 심리적인 것을 드러내려다보니 격해진 것도 있었다. 때로 지필묵으로 안 되는 것은 목판으로, 그의 말에 의하면 화풀이하듯이, 풀어내기도 했다. 지필묵 작업과 목판작업은 지금까지도 상보적 관계로 유지해오고 있다. 역사와 사회에 관심 있었다지만 그의 관심은 차츰 역사 그 자체보다는 역사적인 것의 속성, 시간적인 것의 속성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탐구하는 쪽으로 나아간 것 같다.
차츰 차츰 그는 ‘내가 살고 있는 것의 냄새를 그리려는’ 쪽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삶 속에서 부딪치고 호흡하는 것을 그리려 지필묵을 들고 밖으로 나가곤 했다. 아현동 일대 도시 풍경을 그린 현장 모필 소묘, <창밖을 나선 풍경>, 특히 <길 혹은 연기>, <지하철>, 인천을 그린 <도시 풍경>, <앞산 연구>(파주 하제마을 앞산) 등 연작들이 이렇게 해서 그려졌다. 풍경화지만 이것 역시 풍경 자체보다는 시간이나 호흡의 개념을 탐구하는 것으로 점차 발전해갔다. 그러면서 지필묵으로 자신이 직접 부딪치는 대상과 자신의 호흡을 드러내는 것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실사는 매우 중요했다. <할머니를 위한 소묘>는 그 중 가장 기념비적이다. 이것은 원래 답이 없는 작업이었다. 다만 부닥치고 헤매면서, 불확실성 속에서 작업하며 점점 가능성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서울에서 유성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이 작업을 하면서 이동 중 변화하는 풍경 속에 매우 강한 에너지가 있음을, 풍경 스스로가 속도를 지닐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3.
그의 회화작업에서 의미 깊은 변화는 99년과 2000년간의 <창밖을 나선 풍경>연작과 <다섯 개의 정원>연작 등과 더불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 변화는 2001년과 2004년간의 <풍경> 연작이나 <사라짐에 대한 경의> 연작으로 이어지면서 유근택 회화의 가장 뚜렷한 표정 중 하나를 만들게 된다. 수풀이나 정원, 공원 등을 그린 화면에 짧은 필획들이 무수히 중첩되어 그어지면서 그 속에 사람, 불, 연기 등이 그려진 그림들이 그것이다.
일본인 평론가 미네무라 도시아키는 유근택의 회화에서 “결코 규칙적이라고 할 수 없는 붓놀림이, 그래도 일정한 질서를 갖고 묘사대상과는 별개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따스함과 엄격함이 섞여져 있는 묘한 분위기가 빚어져 나오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것은 이 그림의 정서적 표정이 그것을 뒷받침하는 언어의 구조와 같은 골격적 요소와 혼연일체가 되어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았다. 그가 ’눈과 대상 사이의 중간지대’나 ‘자립적 회화공간’에 관해 언급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공원이나 수풀의 정경과 그것을 응시하는 화가와의 사이에, 일정한 거리와 시야가 의식적으로 설정되어지면서, 그렇게 해서 얻어진 눈과 대상 사이의 중간지대 자체가 마치 회화의 무대가 된 것처럼, 애매하게 부유하는 면 공간에 수미일관한 일정한 필법이 행해지게 된 것인데...대상과 화필 어느 쪽이 현전하고 있는지 알기 힘든 자유자재의 움직임을 만들어낸 것이고...주관으로부터도 대상으로부터도 반반씩 자립한 회화의 공간을, 추상회화와는 별도의 방식으로 획득한 것이다.”(미네무라 도시아키 ‘언어, 재잘거림, 침묵, 때로는 소음’, 2005 도쿄의 Gallery21+葉의 유근택전 서문)

유근택의 이러한 붓놀림의 구사와 그 효과는 최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면서 그의 회화작업 매우 중요한 미학적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작에서는 그것이 또 다시 변주되면서 이제까지와는 많이 다른 이야기와 심리적 공간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2002년의 <풍경>연작에서 <대화>나 <만찬>이란 부제가 붙은 연작들에서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난제들>이란 부제가 붙은 연작들에서 그 변화를 날카롭게 감지할 수 있다. 후자는 이 무렵 새로 이사가 살게 되었던 아파트의 실내를 그린 것들이다. <만찬>이란 주제는 나중에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변주된다(유근택은 애니메이션과 비디오 같은 동화상의 의미를 본능적으로 간파한 작가에 속한다).
<대화>나 <만찬>이나 <어쩔 수 없는 난제들>들에서 공통된 것은 그 그림들이 감추고 있는(보다 더 정확히는 감추는 식으로 슬쩍 드러내는) 일상적이고 도시문화적인 징후들이다. 이런 특징은 그 전의 작업들에서도 어느 정도는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보다 더욱 분방한 상상력과 현실 의식이 개입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2004년(사비나미술관) 전시에 나온 <수평적 이사>연작과 <바닥, 혹은 또 다른 정원>연작에서 그리고 <풍경>연작, <숲·恭陵>연작, <구석에서 일어난 세 가지 사건>연작에서 그것을 감지할 수 있다. <수평적 이사>연작이 이제 막 이사 와서 짐을 풀고 정리가 될 때까지, 어지러히 흩어진 실내와 무심하고 평온한 듯한 거실 모습 등 아파트 실내의 상황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었다면, <바닥, 혹은 또 다른 정원>연작은 잡다한 물건들이 어지러히 널려있는 그 거실 바닥을 미니아츄어들이 늘어선 ‘또 다른 정원’으로 변주시키면서 낯설게 만든(데뻬이스망시킨)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후자의 연작은 이번 동산방 전시에서 <홍수>라는 새로운 경관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풍경>과 <숲·恭陵>과 <구석에서 일어난 세 가지 사건>연작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정치적 현실에 대한 암유와 그것이 촉발하는 심리적 긴장을 응축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 중 마지막 것인 <구석에서 일어난 세 가지 사건>은 각기 <울타리>, <불>, <골목>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세 작품으로 되어 있는데 그 세 작품의 연결이 만들어내는 다분히 영화의 언어를 닮은, 혹은 신구상회화적인 내러티브가 모호한 심리적 긴장과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4.
내러티브가 잠재된 화면은 무언가에 대한 은유의 형식일수도 있고 또는 그냥 유희의 형식 이나 개인적인 비밀일기일 수도 있다. 꼭 그 중 어느 하나가 아니라 복합적인 것일 수도 있다. 이번 전시작에서도 그것이 다양한 변주를 보이며 계속되고 있다. 아파트의 거실에 놓인 TV화면 속에서 불타는 집이 보인다든지, 정원을 배경으로 6개의 깃대가 화면을 수직 방향으로 분할하면서 화면 아래쪽으로 마이크, 식탁, 앰뷸런스 차량 등이 보이는 <어떤 국가주의적 풍경>이 그 예가 될 것이다. 후자는 깃대들에 의한 등간격 분할과 그 끝의 6개국의 국기에서 6자회담에 대한 은유가 읽혀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같은 아파트 거실을 그린 화면의 중앙에 마치 정지화면처럼 공중에 붙박이로 떠 있는 소년(방금 텀블링 쿠션으로부터 솟구친 듯한)이 보인다. 가족이 있는 거실공간에 식물들이나 옷가지, 혹은 꽃들이 중첩되어 떠 있는 초현실적 상황의 작품들도 있다. <자라는 실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연작들은 <삶의 피부> 연작에 포함되거나 그것에 맞닿아 있는 작업이다. 홍수에 잠겨 지붕만 보이는, 미니아쳐 크기로 작아진 집과 물에 잠긴 냉장고, TV, 소파, 가구 등 여러 오브제와 인물들로 가득한 <풍덩!>연작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홍수라는 상황은 무거운 주제로 설정된 것이 아니고 일상적인 시각성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설정된 것 같다. 모든 물건들이 물에 잠겨 위만 보이고 있고 ‘이카루스의 추락’을 환기시키듯 풍덩! 물속으로 무언가 추락한 흔적이 있다. 오브제들 가운데는 한국근현대사 사진집에서 볼 수 있는 역사적 도상도 작은 인형처럼 슬쩍 끼여 넣어져 있다. 단지 오브제만이 아니다. 낯설어진 공간 전체가 은폐와 드러남, 퍼즐과 은유의 놀이터가 된다. 작가는 스케일의 전환과 비일상적 상황에 의한 낯설게 하기를 다양하게 변주하며 즐긴다.
최근작의 다양한 소재적 스펙트럼과 복합적이고 화려한 화면 경영은 작가의 주의 깊은 시선이 얼마나 일상의 끈을 바짝 가까이 죄면서 그것을 낯설게 즐기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를테면 아파트 실내의 어린이와 바닥 가득 널려진 장난감들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어느 날 작가는 그 장난감들이 별개의 생물계처럼 생생히 살아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때로는 마주 보이는 아파트 동의 미니멀리스트한 압도적인 풍광에서 발견한 현기증을 새로운 서정성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한다. 아파트 창들을 화면 가득히 그린, <한낮>과 <밤> 두 가지로 나뉘는 <삶의 피부>연작들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나를 구성하는 사선 위의 드로잉들>과 같은 계열에 속하는 연작들이다. <창문>연작은 유근택의 조형미학과 심리적 환기력에서 새로운 현대적 울림을 추가하고 있다. 작가 자신도 이 작업을 앞으로도 계속 확장 발전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스케일 이동, 범람과 팽창, 홍수 같은 상황이나 그와 유사한 ‘낯설은’ 상황의 연출은 이렇게 사소한, 그러나 생생한 일상의 재발견에서 촉발되고 발전한다.
때로는 현실적 세계(국제정치나 권력)에 대한 은유로 읽혀질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만찬>연작 가운데 하나인 옆으로 긴 대작 <Something to Eat or Something of Eaten up ,먹을것,혹은 먹힐것>(2005)에서 그걸 느낄 수 있다. 때로는 그것이 생물학적, 생태학적 차원에 더 관련된 뉘앙스를 띄기도 한다. 정원의 풀밭을 가로지르는 긴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이 하나하나 먹어치워지고 사라지는 것,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싼 초목들이 자라고 벋어나가다가 마지막엔 짙게 번지는 곰팡이 같은 어둠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2002년 작 애니메이션 <만찬>이 그 예다. 이 애니메이션의 모태가 된 같은 제목의 회화작품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만찬>의 다른 신작이 포함된다.
<두 대화>는 작가가 여름에 동물원에 가서 스케치한 것에서 출발한 작업이라고 한다.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인데 무슨 이야기가 잠재되어 있는 듯한 여운을 준다. 때로는 작가의 모습이 화면 속에 유령처럼 어른거리기도 한다. 숲 속에 사생 화구를 맨 화가가 들어가 있거나 숲 속에 그 숲을 그린 그림을 운반하고 있는 화가가 들어가 있다.
<풍경>연작은 앞서 말했듯 작가가 전부터 해온 것이다. 여기서 풍경은 씬(Scene)이라는 영화적 개념에서 온 것이고 그 점에서 랜드스케이프(Landscape)와 다른 것인데 사건적, 이야기적 의미가 있는 풍경이랄 수 있다.
작가는 앞으로는 실내작업을 그만 하고 주로 밖에서 그리는 작업에 주력할 것이라고 한다. 그 하나가 구상중인 <경주 작업>인데, 이 작업은 시간이라는 주제, 특히 <풍경>연작에서 미처 충분히 풀지 못 했던 소멸하는 시간이라는 문제에 집중적으로 접근하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5.
유근택의 지난번 사비나 전시와 그리고 이번의 동산방 전시작들에서 나는 그가 반복된 운필의 농밀한 감각성을 바탕으로 현대회화의 화려한 형식언어들을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동화하며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은유적이고 유희적인 차원까지 끌어당겨 현대회화의 열려진 복합성 속에서 농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이 정확히 무엇인가 또 그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결국 오늘날 회화란 무엇인가란 질문과 닿아 있다.
한 가지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유근택의 그림에서 동양화의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 아직 유효한 것일까. 유근택이 동양화의 길을 새롭게 하고 있다는 식의 말이 아직도 유의미한 것일까. 나는 유근택의 작업을 통해서 동양화의 윤택하고 섬세한 관능이 어떻게 현대회화에 빛을 던질 수 있나를 발견하였다. 이런 발견은 행운이다. 물론 그 역으로의 얘기도 원칙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즉 앞서 말한 현대회화의, 혹은 현대미술의 화려한 형식언어가 동양화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방향의 평가 혹은 문제설정을 피해야 된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유근택의 작업은 동양화의 새 경지를 개척하고 있는 든든한 모습을 우리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동양화라는 입지에서 그리고 그 안경으로 유근택을 얘기하는 한 우리는 신비화에 빠질 수 있다. 나는 이 점을 경계해야 된다고 본다. 오히려 그 신비화의 틀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유근택의 그림이 더 잘 보인다. 또한 그의 그림의 덕성이자 동시에 매너리즘일 수도 있는 그 무엇까지도 더 잘 보인다. 그런데 비록 ‘현대적’이라는 수사를 붙이면서라도 동양화라는 안경을 고집하는 한 그의 그림은 작은 것, 작은 세계로 응축되고 만다. 작은 것의, 작은 회화의 갑갑한 한계 속에 갇힌다.
이미 그의 작업은 눈을 크게 뜨고 봐야 할 만큼 충분히 매혹적이다. 그리고 그가 보여주고 있는 묵직하고 근실한 연마와 변신의 과정도 충분히 주목될만한 값어치가 있다. 그러나 그는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다. 경계라는 것은 일단 동양화와 현대미술의 경계를 의식해서 한 말이다. 이런 뜻에선 나는 그가 그 경계를 과감히 깨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그러나 또 다른 뜻의 경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 말이다. 생각하기 나름으로는 인문학적(역사적) 상상력과 생물학적 상상력 간의 경계일 수도 이다. 유근택은 화가의 입장은 인문학적인 것보다는 생물학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최근 나에게 말한 바 있다. 생각해보면 앞서 말한 그의 작업의 결과 발상법, 에너지와 자유가 모두 이런 태도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현재 그는 그 경계를 유쾌하게 넘나드는 것 같다. 지금은 그의 예술적 비행이 고공으로 높이 떠올라 있는 시간인 것 같다. 이카루스처럼.

성완경 / 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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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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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laxogml 작품을 보다보면 뭔가 은근히 빠져들게 하는거 같습니다. 2010.10.01 17:24:26
aroom 초현실적인 구성이 재미있네요. 실제로 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2010.09.30 14:12:33
phs1972 이런 표현을 써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잘익은 김치를 먹는 기분이랄까요. 멋집니다. 2010.09.19 13: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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